내가 국내든 해외든 관광을 많이 다닌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샌디에고에서 했던 고래관광이라 답할 것이다.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파리의 에펠탑도 내게 주지 못한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한 고래관광은 항구에서 여객선을 타고 나가 2시간 동안 Grey Whale, 즉 회색고래[각주:1]를 보고 오는 것이다. 2월은 회색고래들이 남쪽 따듯한 멕시코 인근의 태평양에서 새끼를 낳고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는 시기다. 그래서 운 좋으면 어미와 새끼를 같이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것처럼 가까이서 고래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Mother Earth(이걸 뭐라 표현해야 할지. 어미 자연?)의 품에 있는 살아 있는 야생 상태기 때문에 배가 가까이 가면 깊이 잠수해 버린다. 그래서 가끔 수면 가까이 올라와 숨을 쉴 때 쏟아져 나오는 물 방울을 보며 거기 고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정도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노련한 선장은 마이크로 몇 시 방향을 보라 한다. 그러면 저 멀리에서 육안으로 겨우 분간할 수 있는 정도로 작은 분수 기둥이 있다. 고래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이다. 갑판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하나같이 "와아아"하면서 감탄한다. 동물원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살아 숨쉬는 생명의 진귀함이다. 불과 몇 백 미터 밖에 우리와 똑같이 붉은 피를 갖고 있고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거대한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운이 좋으면 고래의 꼬리 지느러미도, 가슴 지느러미도 볼 수 있다.


물론 아무것도 못 볼 수도 있다. 인간이 보고 싶다 해서 볼 수 있는 야생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항상 의지대로 볼 수 있다면 그건 야생이 아니다. 누구의 표현처럼 진정한 야생을 체험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부재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래관광을 나갈 때 '목숨 걸고' 고래를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고래를 본다는 목적보다 고래를 보는 과정이야말로 고래관광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느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마지막 동물이 숨을 거둘 때,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인디언 추장 시애틀








  1. 동해에 서식하는 귀신고래와 같은 종이다. 다만 다른 아종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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