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총선거는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가 의회에 더 많이 반영되고 국민의 지지 여부와 선거 결과가 더 일치하도록 하는 선거법 개정안의 취지(이 조차도 형편 없는 원안에서 엄청 후퇴해 악취나는 누더기 쓰레기가 된 상태였다)를 깡그리 무시하는 두 거대정당의 꼼수 속에 치뤄진다. 그걸 위해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목을 멘 정의당은 이 꼼수 때문에 졸지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격이 됐다. 그래서 예상했던 혹은 목표했던 의석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의석을 갖게 될 것이다. 원래 미통당(이름이 무엇이든)과 민주당(역시 이름이 무엇이든)은 염치가 없고 뻔뻔하기 그지 없어서 그들의 온갖 반칙과 권모술수는 차라리 디폴트값이라 하자. 그러면 정의당은 그런 상황에서도 선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난 3년간 문재인 정권 하에서의 정의당은 정반대 모습을 보여줬다(물론 그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정치적 독립성은 내팽개치고 민주당의 2중대, 정치적 사수대 역할을 하곤 했다. 그래서 정부 정책에 자한당 같은 우익적 반대, 인종주의적 반대, 아니 차라리 똘아이적 반대만 남게 됐다. 진보적 반대, 좌익적 반대 목소리를 정의당은 내지 않았(거나 아니면 속삭이기만 했)다. 3년을 이리 보내고 선거 때 갑자기 표를 달라고 하면 도대체 어느 누가 지지를 할까. 이미 친정부(민주당)와 반정부(자한당)밖에 목소리가 남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버터와 마가린이 있으면 버터를 먹는다. 진품과 짝퉁이 있으면 진품을 선택한다. 결국 정의당이 처한 힘든 상황은 그들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다.
그럼에도 선거 이후 정의당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이미 의회에 진출함으로써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들의 전략은 노회찬의 비극적 죽음으로 파산을 선고했다. 의회에 진출해서 개혁을 달성하겠다는 의회주의의 제일 목표는 의회 진출이다. 당연히 선거와 이러한 류의 정치 활동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돈, 심지어 구린 돈에 대한 유혹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한당이나 민주당처럼 개인의 부와 영달을 위해서 돈을 받진 않겠지만 말이다. 정의당의 의회 도전이 성공하려면 서구 유럽의 노동당/사회당이 그랬듯이 노동조합원을 기반으로하고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의 지지 속에 성장하며 대중적 저항을 발판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시간과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우리가 얼마나 국정 운영을 잘 할 수 있는 유능한 정당인지,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정책을 갖고 있는지를 설파만 한다면 오히려 대중 정서에 타협해야 한다는 압력에 노출되고 스스로 온건화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정의당은 처음부터 지름길로 가려 했고 그래서 민주당이 야당일 때나 여당일 때 모두 공조하고 공동정부를 구성하려 했다. 그러나 자신들은 체제에 위험하지 않고 유능한걸 보여 주고 심지어 굴욕적이게도 남한 정부에 충성 맹세를 할 수록(동지였던 이석기 전 의원의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것) 그들은 민주당과 더욱 차이가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지난 10여 년간의 그런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더욱 영향력이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2. 이런 계급 연합 정치의 문제는 정의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이 꼼수 비례정당을 만들려고 할 때 민중당도 참여 하려 했다. 민중당은 통합진보당이 극심한 국가 탄압으로 쪼개진 경험이 있고 심지어 의원 1명밖에 없는 '체급'도 안 되는 당인데도 어떻게 해서든 민주당과 연합하려 했다. 아직도 한국을 식민지 상태라 보고 친미 매판 자본가를 대변하는 자한당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개혁 세력과도 연합해서 공동 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80년대 세계관을 유지하니 그런 한심한 입장이 나오는 것이다. 혹심한 국가 탄압과 마녀사냥에도 바뀌지 않는 것이다.
3.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는 원래 녹색당을 지지하려 했다. 녹색주의자들의 부문주의, 개인적 실천 강조, 노동자 서민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정책(가령 전기료 인상 같은) 등 지지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그럼에도 한국은 미국과 호주 같은 기후 악당국답게 의회 내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논의가 전무하다. 지금 시급히 대책을 세워서 온실가스 감축을 해도 모자랄 판에 지금 여당은 석탄 발전소를 늘리고 있고 제1야당은 원전을 늘리자고 하고 있다. 기후 악당 국가의 걸맞는 의회다. 정의당도 하는 짓이 한심하기 짝이 없고 그래서 녹색당이나 뽑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녹색당이 민주당의 꼼수 비례정당에 참여한다고 당원 투표를 통해서 결정했네? 이게 무슨 멍청한 결정인가.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며 싸워도 힘들 판에 꼼수를 써서 의회에 진출한다고 뭐가 나아질까? 오히려 원칙없는 지름길로 가는 것은 독이 될 수 밖에. 아니나 다를까 녹색당의 꼼수 비례정당 참여 발표가 있고 나서 민주당에서 거부했다. 녹색당 비례 대표 후보가 트렌스젠더라서. 다시 녹색당은 꼼수 비례정당 참여를 취소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당원들이 탈당했다. 처음에는 민주당과 연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는 당원투표로 결정한 것을 취소했다면서 그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원칙 없는 정치가 얼마나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지 이 씁쓸한 에피소드가 보여 준다. 한 때나마 그들을 뽑으려 하고 심지어 너무 이질적인 입장에도 입당까지 생각했던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4. 이미 지난 총선 때도 지난 대선 때도 정의당 후보에 주는 마지막 표라 생각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의 감정이 이런 것일까. 민중당이나 녹색당이나 도찐개찐 상황에서는 그동안의 행태가 너무 꼴 보기 싫고 한심해도 그냥 다시 정의당에 표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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