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박근혜가 이대에서 열린 무슨 여성어쩌고 행사에 참가했다가 이대 학생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았다. 사실 박근혜가 생물학적 여성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마초 저리 가라할 정도이니 '치마만 두른 박정희'라고 보는게 맞다. 박정희 때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착취와 억압과 차별과 멸시와 천대를 당했는지 생각해보면, 첫 여성대통령이니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게 그저 어불성설임을 알 수 있다.
어제 시위가 특히 더 의미가 있는 것은 고작 2~30명에 불과했던 '조직된' 학생들이 금새 250명 규모로 불어 났다는 점이다. 마치 2008년 촛불시위 때 1~2천 명의 시위대가 거리 행진을 시작하며 종로 거리를 돌면 금새 5천 명 이상의 규모를 불어난 것처럼 말이다. 당시에 정말 종로 바닥에 있는 사람들-그야말로 데이트 즐기던 연인들, 퇴근하려 버스 기다리는 직장인들, 술 먹는 청년들-이 대열로 합류하며 '이명박은 물러가라'며 구호를 외치며 난생 처음일 법한 '데모'를 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비록 지금은 당시에 비해 경제위기도 훨씬 심해서 사람들의 사기도 떨어져있고, 대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청년들도 취업난이 훨씬 심해 자신감도 없고, 진보정당은 사분오열해서 구심 역할을 조직도 없고(그나마 제일 컸던 통합진보당은 아예 박근혜가 해산시켰다!), 그렇다고 제1야당은 정부보다 더 무능력하고, 정부의 노동 개악에 맞서 노동자 투쟁도 별 볼 일 없고. 뭐 하여튼 이래저래해서 투쟁에 사람들이 적극 나서기 쉽지 않지만, 적어도 적어도 내가 확신하는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과 분노는 그때 못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물이 끌어 오르기 전 구십몇 도 정도의 온도에서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어제 시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통쾌함을 줬을 것이다. 사복경찰을 온 학교에 죄 풀어서 박근혜가 막으려고 했던 것은 비단 백수십명의 힘 없는 여대생들이 아니라 그에 반대하는 모든 목소리와 저항의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그런 시도에 용기있게 맞선 이대생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이 멋진 시위가 너무 통쾌하다. 도대체 이명박때부터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는데, 아주 통쾌했다(물론 나는 노무현때도 지긋지긋했다.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확산, 한미FTA 추진 등에 반대하며 나는 매 주말 거리에서 노무현에 반대했다).
아참. 통일이 생각보다 금방 될 거 같다는 기운(!)이 요즘 든다. 왜냐하면 세계 200개 넘는 나라 가운데 네 나란가 다섯 나란가밖에 사용하지 않는 국정교과서를 북한하고 남한이 공히 쓰니까 이제 둘 사이에 거리는 상당히 좁혀진 것이다. 불평등은 둘다 너무 심해서 김정은을 필두로 한 당관료와 북조선 인민의 격차와 한국의 재벌 및 지배세력과 남한 민중의 격차는 다를 게 없다. 또 북조선은 3대 세습하고 남한은 2대 세습하니 이 또한 얼마나 유사한가.
이명박 때는 당시 여당 대표였던 박근혜가 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 연설하는 그런 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의원들이 박근혜 말 한 마디에 이제는 다 종북이니 빨갱이니 좌편향이니 예의 써먹는 그 식상한 레파토리를 주술처럼 외우는 그야말로 1인 독재정당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벌어지니 이 또한 조선노동당과 어찌 다르다고 할 수 있겠나. 조선노동당 정치국 위원으로 실세 가운데 하나였던 장성택을 김정은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총살 시키고 박근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여당 원내대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찍어 내쫓으니 이 어찌 비슷하지 않으리.
언론도 조선중앙통신과 KBS, MBC 별 차이없다. KBS 이사장과 방문진 이사장이 그야말로 '박정희도 공산주의자'라고 얘기하는 다른 차원에 있는 인간들인데. 이명박 때는 종편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것 같다. 조중동을 방송으로도 봐야된다고. 근데 이제는 종편을 걱정할 게 아니다. 왜냐하면 지상파도 다 종편스럽게 되버려서 언론의 비판 기능은 (특히 권력 비판) 거의 거세된 느낌이다. 며칠 전까지 시사 토론방송 사회보던 앵커가 이제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가고. 진짜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직업 의식이나 양심도 없는 인간들이 넘쳐나는.
국호도 얼마 전까지는 사람들이 대체로 월드컵 삘을 받아 대한민국이라 했는데, 요즘은 헬조선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이제 사람들이 부르는 남한의 국호에도 조선이 들어가니 이 또한 북조선과 더 가까워졌다고 느낄 수 있는 기운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국호는 그냥 헬조선으로 하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휴전선 이북도 헬이고 이남도 헬이기 때문에 그냥 '조선은 하나다' 마 이 정신에 입각해 헬조선을 계속 쓰는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제 통일된 헬조선의 '국정' 역사 교과서에는 북쪽 령도자는 백두산에서 태어나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고 가르치고 남쪽 령도자는 한라산에서 태어나고 낙동강을 나뭇잎을 타고 건넜다고 배우는 것이다. 어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럴싸하지 않아? 아냐? 왜? 나치의 괴벨스가 얘기했던 것처럼 원래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들이 믿게 되는 거야. 이미 박근혜를 뽑은 미개한 사람이 절반이 넘고, 세월호에다가 이 개지랄을 떨어도 지지율이 40%인데, 조금만 더 종북 빨갱이, 좌편향 타령하면 나머지 사람들도 믿을 거야.
진짜 우리 모두는 이래저래 지옥같은 데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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