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가 안 그렇겠냐만은 2014년은 아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다.
1. 지난 12년간 내가 몸 담은 단체에서 나왔다. 그 가운데 10년은 내가 온 힘을 다해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와 정치적 실망은 쉽사리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난 정치적 인간으로서는 고아다. 의탁할 곳 없는, 희망을 찾을 곳이 없는 상태다. 언제까지 이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될지 모르지만, 짧은 시간 내에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2. 올해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피 말리는 전쟁터에 나간 느낌이 이럴까. 자영업의 현실을 다루는 다큐를 보면 '맞어 맞어'를 연발하며 공감하고, 집에 가는 길에 식당이 텅 비어 있으면 내 마음이 휑하니 빈 것 같다. 예전에는 간과했던 자영업 문제가 사실 한국에서 굉장히 큰 문제임을 온 몸으로 깨달았다.
3. 세월호 참사는 실로 충격이었다. 말 그대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어느새인가 나는 우리나라가 예전의 후진적인 사고, 예를 들어 성수대교 붕괴라든지 삼풍백화점 붕괴같은 사고가 일어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경제 규모는 커졌다고 해도 여전히 예전의 악습들이 많이 남아 있고, 황당한 재난에도 속수무책이었다. 경제 규모는 커졌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많이 따도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사람들이 점점 희망을 잃고 있고, 민주주의 퇴행하는 것처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정말 며칠 동안은 출근하며 지하철에서 신문을 볼 때마다 눈물이 글썽이고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도대체 이 사회가 얼마나 정신 나간 사회인지. 박근혜와 그 십상시들의 악어의 눈물을 보면서도 분노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고, 그들을 위로하던 권력자들은 희희낙락거리고 있다. 삐뚤어져도 한참 삐뚤어졌다. 이 사회 구조 자체를 뜯어 고치지 않고선 세월호 참사같은 비극은 반드시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뜯어 고쳐야 할 구조 정점에는 박근혜가 있다.
4. 올해는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했다. 물론 이명박 때부터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계속 위축됐다. 그러나 올해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위축됐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해서 조금치도 이해 못 하는 헌법재판들관과 대통령에 의해 민주적 권리는 압살당할 위기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반공주의의 다른 이름이고, 천박하고 쌍스런 권력자들을 위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온전한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의 민주주의는 가뜩이나 볼 품 없고 하찮고 저열한 수준이었는데, 독재자의 딸은 그 조차도 마음에 안 들어 반대파 정당을 해산시켜 버렸다.
5.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많이 못 읽었다. 예년의 1/5이나 읽었을까. 문화 생활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오로지 맥주 마시는 것뿐. 험하고 인정머리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게 기쁨을 주고 내 삶의 활력소가 됐던 것은 맥주였던 것 같다. 운 좋게 여러 좋은 맥주를 구해 마실 수 있어서 또한 기분 좋은 한 해였다.
6. 이 외에도 잡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국정원 선거 개입이라든지, 십상시와 문고리의 국정개입이라든지 등등. 그러나 한국처럼 (안 좋은 의미로) 역동적이고 스펙타클한 나라에서 그런 것까지 언급하려면 2박 3일은 필요하다.
0. 부디 내년에도 살아 남기를. 이 험하고 무서운 세상에서,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주고 부축하고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이때다 싶어 야구 빠따로 두들겨 패고 아예 못 일어나게 다리 몽댕이를 뿌러뜨리는 이 잔인한 세상에서 살아 남기를. 그래서 올 한 해 또 고생했다며 술 한 잔 기울이고 웃고 떠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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