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주도에 예맨인들이 들어온 이후 한국은 그야말로 혐오와 증오의 무법천지가 됐다. 얼마 전 뉴스에 보도된, 한 한국인이 이집트 출신 이주자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면서 폭력을 행사한 사건은 혐오가 공기처럼 얼마나 우리 주위에 넓게 퍼져있고, 이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얼마나 쌍스러운지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혐오를 내뱉는 사람들의 근거는 죄다 가짜 뉴스에 기반한다. 우익과 언론은 이런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사람들은 이에 동조하며 공포를 조장한다. 일부에서 가짜 뉴스, 통계 조작이라 알려줘도 듣지를 않는다. 무슨 얘기를 해도 이미 무슬림들은, 난민들은 강간범이고 살인마이고 우리 일자리를 뺏는 파렴치한이다. 


만약 미국에서 내전이 벌어져 미국인 400명이 제주도에 들어왔다면 어떠했을까? 우리는 두 손 벌려 환영하지 않았을까? 언론들은 형제의 나라니 피로 맺은 혈맹이니 어쩌고 하면서 미국인을 도와야 한다고 선동하고, 우익 교회들은 신도들을 모아 부채춤이라도 추면서 환영했을 것이다. 각 학교마다 원어민 교사 일자리를 만들고, 다큐 프로는 그들이 얼마나 곤경에 처했는지, 예능 프로는 두유노김치? 뭐 이러면서 방송했을 것이다. 전 국민적인 모금 운동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한국에 40년 가까이 산 경험으로 미루어본 바 이를 확신할 수 있다. 


그럼 예맨인은 왜 범죄자 취급하면서 내쫓으려 할까? 백인 만큼 키가 크지 않아서? 미국인만큼 영어 발음이 좋은게 아니여서? 아니면 피부색이 하얗지 않아서? 무슨 핑계를 대든 결국 지금 예맨인들을 향한 사람들의 저주는 결국 인종주의와 무슬림 혐오주의에 기반을 하고 있다. 일본의 재특회가 재일 한국인들을 내쫓으라 하면서 인종주의적 막말을 쏟아붓고, 미국의 KKK가 흑인에 린치를 가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는 예맨인들에게 인종주의적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만 봐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아시아인에게 벌어진 인종차별 사건에 대해서 벌떼같이 달려들어 분노하는 사람들이 예맨인들에 대해선 똑같이 인종차별로 대하고 있다.


예맨은 우리와 매우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여서 우리처럼 반제국주의 투쟁을 벌였고, 분단의 아픔도 겪었고, 또 독재에 신음하면서도 투쟁을 벌인 역사가 있다. 이것이야 말로 형제의 나라 아닌가. 내전으로 온 국토가 지옥으로 변한 마당에, 살겠다고 지옥불을 탈출해 온 사람들에게 다시 지옥불로 돌아가라니 이런 잔인하고 냉혹한 일이 어디있나. 


사실 한국은 그동안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5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배출(?)했다. 당시 많은 나라들의 도움으로 난민들은 정착하고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전쟁 위기가 고조됐는데, 만약 전쟁이 벌어졌으면 지금 또 수 십만의 난민이 발생했을 것이다. 또 한국이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먹고 살기 힘들어 여론조사를 해보면 2~30대 90%가 기회가 되면 이민을 가고 싶다고 한다. 이 또한 경제적 이유로 인한 난민일진데, 자기들은 선진국으로 가서 살고 싶으면서 전쟁의 참화를 피해 온 사람들을 내쫓자는게 말이 되나. 


게다가 한국은 유엔이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난민 지원 혜택을 받은 나라다. 당시 식민지와 전쟁으로 찢어지게 가난할 때 국제 사회가 도움을 줘서 목숨을 부지했는데, 이제 좀 먹고 살만하니까 나몰라라 한다? 이런 천하의 배은망덕하고 싸가지 없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경우가 어디있냐? 이런 내용을 알려주면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외국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천하의 개쌍놈들이라 하지 않을까.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라 하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혐오와 증오와 배제와 저주를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사랑과 연대와 우정과 박애를 가르칠 것인가. 인종주의자는 인종주의자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종주의자는 여성차별주의자, 동성애차별주의자, 지역차별주의자, 장애인차별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지 우리 손에 달려있다.


다음은 150여 년전 조선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펼치던 프랑스 신부 다블뤼가 쓴 글이다.


"이 나라에서는 자선 행위를 진정으로 존숭하고 실천한다. 사랑방에서 받는 대접 이외에도 적어도 식사 때 먹을 것을 달라면 거절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일부러 그를 위해 밥을 다시 하기도 한다.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식사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즐거이 자기 밥을 나누어준다. 뱃사공들은 밥을 먹지 않고 배 타러 나온 사람과 나누어 먹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잔치가 벌어지면 언제나 이웃 사람들을 초대해서 형제처럼 모든 것을 나눈다. 여비가 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엽전 몇 닢의 도움을 받는다. 없는 사람과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조선인이 가진 덕성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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