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운동? 그러기엔 뭔가 좀 부족한 것 같고. 어쨌든 매우 빠른 속도로 번진 현상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빨리 번진 만큼 또 빨리 꺼질 수도 있다. 자고로 사회 현상에는 휘발성이 강한 성질이 있기 때문에.


솔직히 참으로 놀랍다. 도대체 대학생들이 대자보를 안 쓰고 안 본지가 얼마나 오래 됐는가. 먹고 먹히는 사회의 경쟁이 대학생들의 일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대자보란 그냥 틀에 박힌 소위 '권'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마저도 몇 년 전부터는 근사하게 출력한 각종 학원, 기업 후원을 받는 스펙 쌓기 동아리의 홍보물에 묻혀서 금방 덮히기 일쑤다. 지금 지성의 전당(?)이라는 서울대에 한 번 가봐라. 내 말이 틀렸나.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득한 학생들은 그것을 대학에 와서도 한다. 토익, 텝스, 학점, 스펙, 스펙, 스펙…예전 대학생들은 지긋지긋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이라는 곳에 가서 해방감을 맞봤다면, 지금 대학생들은 고등학교의 연장선인 대학을 다니고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졸업하면 정말 낭떨어지에 내몰리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받는 경쟁 압력이 더 클 것이다. 그만큼 좌절도 더 할 것이고. 회상을 해보자면 내가 처음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학교 본관 앞 광장에 대낮부터 막걸리 마시는 학생들을 왕왕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군대에 다녀와 복학했을 때부터는 4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왠 대자보? 그리고 한 명이 아니라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붙이는 것은 도대체 뭐지.


내가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도 느끼고 있었구나라는 심정일 것이다. 우리는 이명박 때부터 조금씩 천천히 위축됐던 것 같다. 한 마디로 국민을 쫄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1년 동안 이게 지속되고 나아질 전망이 아예 보이질 않는 것이다. 언제부터 정부와 언론은 툭하면 '종북'이라 낙인 찍는다. 이걸 해도 종북, 저걸 해도 종북. 이제는 좌파 활동가, 노동조합 활동가, 시민단체 회원 등 원조 빨갱이(?)말고도 신부님, 목사님, 스님 등도 종북이란다. 정말 전국민의 종북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광범위한 낙인찍기를 보면서 처음에는 단순히 '나는 종북이 아니니까'하고 넘어갔을 게다. 그러나 이 광기가 심해질 수록 자신 스스로도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서 현 정부에 비판적인 말을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 종북몰이의 진짜 목적은 진짜 종북주의자를 솎아 내려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이 현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말을 함부로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위축시키고 스스로 말을 검열하고. 이게 종북몰이의 진짜 무서운 점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뭔가 허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매일 바쁘게 토익 공부하고 학점 따고 취직 준비하고 이미 취직한 사람은 개처럼 일하고…..애인 만날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결혼은 언감생심, 집 사는 것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고……나는 열심히 사는데 달라지는 것은 없고 미래에는 달라질 것이란 희망도 없고. 모두가 열심히 살지만 모두가 불행한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갖고 살았다. 그리고 싸늘한 냉기가 그 구멍을 통해 왔다갔다 했다. 무서워서 함부로 개기지는 못 했지만, 그냥 궁금해서 '안녕들 하십니까'하고 물어 보니 사람들이 반응한 것이다. 사실 나도 안녕하지 못 했다고. 그런데 무서워서, 남들은 다 그냥 잘 사는 것 같아서 안녕한 척 했다고. 


이 현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매우 흥미롭고 감동적이기 까지 하다. 냉소로 가득찬 내가 그동안 느꼈던 감정을 아주 잘 표현했다. 


나는? 물론 안녕치 못 하지. 다른 사람들 하고 똑같이. 이 정신 나간 세상에 누가 안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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