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이 쉽사리 승리할 것이다. 문제는 유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대중시위로 치뤄지는 이번 선거가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지난 겨울 엄동설한에 촛불 들고 나온 사람들이 단순히 박근혜 일당의 국정농단에만 분노해서 뛰쳐 나온게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을 비롯한 이 온갖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쌓였던 분노때문에 뛰쳐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로 치뤄지는 선거 수준이 이 모양 이 꼴이다. 직전 집권당 후보의 돼지 발정제 논란은 원체 그 당 수준이 그러니 넘어가자. 그 돼지우리 같은 당을 뛰쳐 나와 합리적이라고 하는 유승민은 아직도 주적 타령이고 호전적이기 짝이 없는 주장을 입만 열면 한다. 이 땅의 대다수 사람의 삶을 힘들게 하는 주적은 북한보다도 남한 정부이다. 안철수야 대통령되고 싶어서 줏대도 없고 근본도 없으니 별로 말할 가치도 없다. 문제는 문재인이다. 도대체 얼마나 자기 확신에 차있어야지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방송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권 변호사를 했다는 (아니 '인권' 변호사가 아니라 '그냥' 변호사도 보편적인 인권의 가치 수호를 그 직업적 사명으로 갖는다) 사람이 얼마나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지 인권을 내팽개치고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도대체 지 까짓 게 뭔데 동성애에 대해 찬성한다 반대한다 말하고 지랄이냐고. 아니 도대체 내가 누굴 좋아하고 사랑하는 문제에 대해 왜 왈가왈부하냐고. 이게 도대체 찬반으로 얘기할 수 있는 문제냐고. 외국같았으면 나찌나 상똘아이가 아니면 공개적으로 이렇게 얘기 못 했을 것이다. 이런 후보가 '민주'당에 있고 개혁을 부르짖는 당의 대선 후보고 당선 유력한 후보라는 게 참담하다. 진짜 쌍스런 이 나라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하나의 에피소드다. 흑인이 깜둥이라 불리는 사회에서 백인은 행복할 수 없다. 여성이 성 차별을 당하고 성폭력 위험에 노출된 사회에서는 남성도 불행하다. 마찬가지로 동성애자가 죄악시되고 부정되는 사회에서 이성애자도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없다.
2. 그렇다고 정의당의 선거운동이 썩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선거를 거듭할 수록 지엽말단적인 거에 목 메다는 듯하다. 예를 들어 2002년에는 주로 얘기했던 것이 무상의료, 무상교육이었다. 이 얼마나 명확한가. 국가가 교육과 의료를 책임져야 한다는 선명한 주장. 근데 이제는 세부적인 공약들을 나열하면서 자신들의 공약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자신들이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는지에 대해 어필하려 한다. 아마도 실현 가능성에 대한 비판에 주눅들어 자신들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지르기만 하는 세력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것 같다. 재원 마련도 마찬가지다. 2000년 초반(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에는 부자에게 부유세를 걷겠다고 했다. 이 얼마나 명확한가. 지금처럼 어디서 무슨 세금을 더 늘리고 저기서 뭐를 해서 얼마를 마련하겠다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가면 된다.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서 서민에게 재분배하는 것. 자신들은 그렇게 과격하지 않고 합리적(?)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건지, 복잡하게 무슨 세금 타령만 맨날하고 있다. 또 촛불 이후에 치뤄지는 대선인데 정의당이 이 정도 지지밖에 얻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 동안 정의당(통합진보당을 주도했던 NL세력도 마찬가지)이 취했던 재앙적인 입장 때문이다. 2012년 총선, 대선과 2010년,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까지 2010년 이후 벌어진 모든 대규모 선거에서 새누리당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민주당에 대한 사실상 무비판적인 지지를 했다. 물론 그 덕분에 몇몇 지역구에서는 당선자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진보 정치 원칙에도 어긋날 뿐 더러 대중에게 진보정당은 민주당의 2중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가 된다. 1997년부터 민주노동당이 그렇게 극복하려고 했던 사표 논리, 사표 심리를 그 후신 정당들이 앞장 서서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조장한 셈이다. 어차피 쟤네는 민주당 지지하고 사퇴할 건데? 왜 찍어. 실제로 2012년 대선 때 분열했던 심상정과 이정희는 모두 문재인을 지지하면서 사퇴했다. 지네들끼리는 분열하고 민주당 지지하는 것으로는 단결한다. (너무 말랑말랑해서 짜증나지만 그래도) 정의당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는 입장에서 야권연대를 지속하는 한 결단코 정의당은 성장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다. 민주당과 분명히 다른 진보적 대안을 끈질기게 제시하고 투쟁할 때만 진보정당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3. 문재인은 당선이 된 후 노무현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노무현이 워낙 극적으로 숨을 거둬서 지금 엄청 미화되고 마치 노무현 시대는 권위도 없고 소탈한 지도자를 모셨던 태평성대 시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비정규직 차별을 고착화하는 비정규직 악법을 만든게 노무현이다. 이라크에 파병해서 학살 전쟁을 도운 것도 노무현이고, 새만금 사업을 지속하면서 환경 파괴한 것도 노무현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이제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조롱한 게 노무현이다. 국가보안법 폐지하겠다면서 국가보안법으로 반대파를 때려 잡은 게 노무현이다. 못 살겠다고 시위하는 늙은 농민 2명을 때려 죽인 것도 노무현의 경찰이다. 측근 비리도 하루가 멀다하고 터졌다. 문재인의 5년도 그럴 것이다. 아마도 문재인은 노무현보다 더 빨리 지지자들을 배신할 가능성이 많다. 이미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사실상 용인하는 입장이다. 국회에서 논의하자고 하는데 민주당이 과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지도 않은 마당에 이건 사실상 찬성하겠다는 것이다. 지지자들을 속이는 말장난이다. 심지어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을 때조차 당시 얘기했던 4대 개혁 입법에 실패했다. 과반이 안 될 때는 국민들이 우리를 안 밀어줘서 못 했다고 국민 핑계 대고, 과반 이상일 때는 수구 세력이 반대해서 못 했다고 핑계대고 안 하고. 아니 도대체 뭐하는 놈들인가? 민주당은 애시당초 개혁 의지가 없다. 노무현이 추진했던 국가보안법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 같은 것은 이미 문재인이 안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노무현이 눈치 보며 좌회적 깜빡이 키고 우회전했다면 문재인은 우회전 깜빡이 키고 우회전할 것이다. 더군다나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고, 한국 경제는 어느 때보다 깊은 침체에 있어서 개혁을 바라는 대중의 열망을 충족시킬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에 할 말 하는 대통령"(노무현이 당선 전에 한 말이다)이 돼야 하고, 가진 자들의 막대한 부를 재분배해야 하는데 문재인이 전통적으로 뼈속까지 친미인 이 땅의 지배계급의 거센 반발을 물리치고 개혁을 밀어 부칠 것 같진 않다. 그럴 사람이었으면 이미 당선 전부터 말 바꾸기를 했을까?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곧 문재인에 대해 실망, 절망, 환멸을 느낄 것이고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그때 다시 거리로 나와 거대한 규모의 시위를 통해 민주당 정부에 개혁을 강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우리 삶은 박근혜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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