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심정은 이러지 않을까. 그야말로 멘붕. 코미디보다 더 한 세상. 정말 멘붕멘붕.


18일 밤에 잠을 설쳤다. 3시간 쯤 눈을 붙였을까. 그 와중에도 몇 번이나 뒤척이고 3번이나 깼다. 결국 4시에 완전히 잠이 깼고 다시 잘 수가 없었다. 내 머리 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박근혜 정부'. 지난 5년 동안 얼마나 '이명박 정부' 욕을 하며 한탄했단 말인가. 그런데 이제는 '박근혜 정부'라니. 


난 박근혜의 한국과 문재인의 한국이 민주당 지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차이 난다고 생각치 않는다. 그것은 분명 과장이고, 오버다. 그래서 난 내 소신대로 문재인보다 왼쪽에 있는 후보를 담담하게 선택했다. 그러나 담담한 체 했나보다. 본능적으로 우파 정부의 5년 연장이 두려워 잠을 그리 설쳤나보다. 


19일 술을 마시며 개표 방송을 봤다. 내 인생에서 마신 가장 맛 대가리 없는 술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인가. 수 없이 되내이며 욕도 하고 한숨도 쉬고. 친구한테 전화해서 욕하고, 하늘 보고 욕하고, 그냥 욕하고.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한 욕을 다 모아도 어제만큼 안 됐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났다. 머리가 아팠다. 숙취 때문은 아닌 듯했다. 밥도 잘 안 넘어갔다. 매일 보는 신문을 다 보는데 3시간이 걸렸다. 이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 몇번이나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게 다 꿈인가 싶다. 이제야 좀 추스리고 자판을 두드린다.


북한은 3대 세습하고, 남한은 2대 세습하고. 북한은 독재자, 독재자 아들, 독재자 손자가 세습하고, 남한은 독재자, 독재자 딸이 세습하고. 북한은 독재국가니 그냥 세습하고, 남한은 민주국가니 투표로 세습하고. 


4.19, 5.18에 이어 6월 항쟁을 거쳐 그나마 이룩한 이 정도의 민주주의. 그 민주주의로 기껏 당선된 사람이 돌고돌아 30년 전에 죽은 독재자의 딸이라니. 그렇다니..


역사의 발전은 이렇게도 더딘가보다.


괜찮다. 며칠 멘붕 상태로 있다가 다시 열심히 살 거다. 이 정글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각해보면 지난 10년 동안 내가 찍은 사람은 다 낙선했다. 박원순 시장 빼고. 하물며 동네 구의원도 내가 찍은 사람은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다.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너무 가슴이 아프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나를 너무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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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크고 내가 경험 몇 차례의 대선 가운데, 가장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다. 내일 모레 투표일이지만 아직까지 결과를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초박빙이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 1997년, 2002년도 모두 박빙이었다. 그때는 그래도 독재의 후예, 잔당들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독재의 생물학적/정치적 계승자가 나왔으니 역사는 쉽게 발전하지 못 하는 가보다.


내가 이번 대선이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다고 느끼는 것은 오히려 독재자의 딸의 등장보다 진보정당의 사분오열과 민주당에 대한 맹목적 지지로 제대로 목소리를 못 내고 있어서일 게다. 1997년부터 조직된 세력으로 참여했던 노동계가 이번 선거에선 온데 간데 없다. 일부 명망가들은 문재인 쪽으로, 또 일부는 안철수 쪽으로 갔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5년 전에 분열했고, 그나마 원조 민주노동당은 올해 또 분열했다. 덕분에(?) 진보신당도 분열해 말 그대로 사분오열된 상태다. 분열보다 더 큰 문제는 독자적 노동자정당/진보정당 방향으로 가던 길을 바꿔서 노골적인 계급협조주의로 빠졌다는 것이다. 1997년 IMF 위기 때 50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절박함에서도 꿇지 않았는데, 2002년 '이회창만은 안 된다'는 정서에도 포기하지 않았는데, 민주당과는 다른 독자적인 진보정당 노선을 이제는 너무 당연하게도 내팽개친다. 심상정은 출마도 안 하고 문재인을 지지하는 굴욕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뻔뻔하게도 출마 한 이정희는 선전하다가 (누구나 예상했듯이) 문재인을 지지하며 사퇴했다. 언제부터 야권연대가 어쩔 수 없는 타협이 아닌 미덕이 됐고, 진보정당 후보들은 민주당 후보의 들러리가 됐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이상규 후보가 한명숙 선거 운동을 하며 춤 추고 다니던 모습은 깊은 충격이었다. 물론 김소연, 김순자가 고군분투하며 진보적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조직된 노동자 세력의 지지없이 한계가 명확해 보인다. 


이게 진짜 더 큰 문제이고,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보다도 훨씬 더 큰 문제다. 진보정당의 독자성은 15년 전에 비해 더 후퇴했다. 적어도 이 측면에서 역사가 더 후퇴했단 것이다.


사회 진보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이 상황 자체가 매우 가슴 아플 것이다. 박근혜가 유력한 대선 후보라는 사실이 믿고 싶지 않을 정도다. 어떻게 이룩한 민주주의인데 말인가. 박근혜 5년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명박 5년도 이리 끔찍한 데 박근혜 5년이라니. 그렇지만 난 노무현 5년도 끔찍했다. 최악이 되는 것보다 차악이 되면 좋을 것이다. 막상 12월 19일 오후 6시 출구 조사 발표에서 문재인이 당선됐다 하면 진심으로 기쁜 마음에 술 마시며 즐거운 밤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술이 깨면 알 것이다. 이제 차악의 5년 생활을 해야 한다고. 좌회전 깜빡이 키고 우회전 하는. 결국 투표는 우리 삶을 바꾸지 못 한다. 우리 스스로의 힘에 달렸다. 


박근혜, 문재인 누가 되든,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사람은 힘든 5년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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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삼불고기 집에서 본 소주 광고다. 


이 광고는 최근에 본 광고 가운데 단연 최고다. 예쁜 한가인을 써서가 아니다. 소주 디자인 예뻐서도 아니다. 배열, 디자인 이런거 나는 모른다.


직장 상사 눈치에 스트레스 받고, 언제 잘릴 지 몰라 불안해 하고, 취직 준비에 젊음을 다 허비하는 것 같고, 비싼 등록금에 짜증나고, 매일 매일 일찍 일어나서 밤 늦게까지 땀 흘려 사는 데도 미래는 여전히 불안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문구가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오늘 한잔하면서 다 털어버리자"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친구가 되주는 소주. 그 감성을 정확히 포착한 아주 훌륭한 광고.


아 말 통하는 친구와 찌게에 쏘주 한 잔 먹고 싶다. 얼큰하게 취해 기분 좋게 웃으며.


도대체 이 광고를 보고 그냥 넘어갈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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