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은 희망을 잃고,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또 양심이란 것을 지키는 사람은 전부 소외되거나 배척되고,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만이 출세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머지 않아 한국 사회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195911월 미국의 한국 전문가들이 작성해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에 제출한 <콜론 보고서>는 당시 한국 상황을 위와 같이 묘사했다. 이처럼 1950년대 말 한국은 정말 심각한 정치경제 위기에 빠져 있었다.

 

못살겠다. 갈아 보자

 

한국전쟁 이후 한국 경제는 미국이 제공한 원조에 의존해 성장했다. 미국의 원조 비중은 19571961년 기간에 국민총생산(GNP)1314퍼센트였고, 재정 규모에서는 50퍼센트를 넘나들었다.

 

이승만 정권은 해방 이후 정부 소유로 바뀐 일본인 재산을 헐값에 넘기고 엄청난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자본가들을 육성하는 한편, 제분제당면방직 공업 등 ‘3() 산업으로 불리는 소비재 부문의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해 자본을 축적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같은 재벌들이 성장했다. 1953년에서 1960년 사이에 15대 재벌의 자기자본은 54곱절이나 증가했다.

 

1950년대 말부터 미국의 원조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는다. 195738천만 달러에 이른 미국의 원조액은 195922천만 달러로 줄었다.

 

원조 감소와 과잉투자로 공장 가동률이 낮아졌다. 1959‘3백 산업의 가동률은 제분 23.3퍼센트, 제당 26.3퍼센트, 면방직 70.8퍼센트에 그쳤다.

 

당연히 실업자는 급증해 1960년 총실업률이 34.2퍼센트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직업 있는 노동자들의 처지가 괜찮은 것도 아니었다. 1957<동아일보>는 노동자 평균임금이 2만 환가량으로 세대당 생계비 4만 환의 절반에 그친다고 보도했다.

 

민중은 이런 생활고뿐 아니라 독재 정권의 억압 정책에도 신음했다.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등 민주적 절차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정치 깡패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이승만 비판 세력에 테러를 가했고, 중고등학생들은 툭하면 반공집회와 이승만을 지지하는 관제 행사에 강제로 동원됐다.

 

민주노조와 좌파 조직 들은 한국전쟁 이후 전멸했고, 대신 어용노조와 반공단체 들이 득세했다. 부정부패도 너무 만연해서 국회부의장을 포함해 사회 지도층이 포함된 비리 사건도 터져 나왔다.

 

민중의 고통과 환멸은 더욱 커져 갔다. 이는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못살겠다. 갈아 보자하는 구호로 나타났다. 당시 대선에서 진보당의 조봉암이 28퍼센트를 얻었고, 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 이기붕 후보가 떨어졌다.

 

총은 쏘라고 준 것

 

독재를 지속하려는 이승만은 정권을 향한 비판과 저항을 온갖 억압 정책을 동원해 억누르려 했다. 진보당을 해산했고, 당수 조봉암을 사형시켰다. 야당 의원들을 지하실에 감금한 채 국가보안법을 개악했다. 야당 목소리를 대변하던 <경향신문>을 강제 폐간했다.

 

이런 조치들은 민중의 불만을 더욱 증폭시켰다. 독재 정권은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상황은 혁명 전야로 달려가고 있었다.

 

민심을 잃은 독재자가 이제 권력을 유지하려면 부정선거 외엔 방법이 없었다. 이승만은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4할 사전투표’, ‘공개투표등 사상 유례없는 부정을 저지른다. ‘4할 사전투표는 유권자의 40퍼센트를 자유당 표로 만들어 미리 투표함에 넣어 놓는 것이다.

 

야당 후보의 등록을 막기도 했다. ‘서류 미비를 이유로 민주사회당의 후보 등록을 거부했고, 반독재민주연맹의 입후보 서류는 괴한들이 강탈해 갔다.

 

선거운동에서 일어난 부정은 더욱 심했다. 민주당이 유세하기로 한 공원에서 갑자기 토목 공사가 진행돼 출입금지조처가 내려졌다.

 

학생들이 민주당 유세장에 가지 못하게 하려고 학기말 시험, 토끼 사냥, 임시수업, 졸업생 송별회, 무용발표회 등 갖은 이유를 들어 일요일에도 등교하게 했다. 학생들이 분노했음은 물론이다.

 

야간은 물론이고 대낮에도 테러가 빈번했다. 그런데도 내무부장관 최인규는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고 했다.

 

부정행위가 너무 심해 선거일인 315일 전부터 산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졌다. 228일 대구의 고등학생 8백여 명은 학교를 정치도구화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투표 하루 전날에는 서울, 부산, 포항, 인천, 원주, 문경 등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투표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군대에서는 유권자 수의 120퍼센트가 이승만에게 표를 던졌다! 독재정권은 이승만의 득표율은 80퍼센트, 이기붕은 7075퍼센트로 하향 조정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최종 결과는 이승만 88.7퍼센트, 이기붕 79퍼센트 득표로 나타났다.

 

선거 당일,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마산에서 터져 나왔다. 경찰은 총을 쏴 7명을 살해했다. 부통령 당선자 이기붕은 이에 대해 총은 쏘라고 준 것 아닙니까?” 하며 발포는 문제없다고 했다.

 

독재정권은 부정선거 항의 시위를 공산주의자의 소행으로 몰아갔다. 시위 체포자를 남로당원으로 조작하고 살해당한 학생 호주머니에 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쓰인 전단을 넣었다. 한국전쟁 이후 “‘도전할 수 없는 원칙의 차원으로 승격”(김동춘)된 반공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부정선거를 무마하려는 속셈이었다.

 

피의 화요일

 

411, 마산 앞바다에서 교복차림의 시체가 떠올랐다.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실종 27일 만에 발견된 것이다. 최루탄 겉면에는 군중을 향해 쏘지 마시오하고 적혀 있었다.

 

사람들의 분노가 다시 타올랐다. 3만 명이 시청, 경찰서, 파출소를 습격해 기물을 부쉈다. 15만 명이 모여 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시위의 성격은 부정선거 규탄에서 이승만 퇴진으로 나아갔다.

 

투쟁의 불길은 전국으로 퍼졌다. 418일 고려대학교 학생 3천여 명이 마산사건 책임자 처벌, 경찰의 학원개입 중지 등을 요구하며 서울 시내에서 시위했다.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정치 깡패들이 쇠파이프, 쇠갈고리, 삽 등을 휘두르며 학생들을 습격했다. 이 소식은 다른 학생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419, 대학생은 물론이고 고교생, 여중생까지 나서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다. 자유당의 나팔수 <서울신문> 사옥과 반공연맹, 자유당 본부 건물은 불기둥에 휩싸였다.

 

사람들이 이승만이 있는 경무대로 향하자 경찰은 총을 쏘기 시작했고, 이내 거리는 시체와 피로 뒤덮였다. 계엄령이 선포됐고 저녁 7시부터 통행이 금지됐다. ‘피의 화요일하루 동안 경찰은 111명을 살해했다.

 

이승만은 국무위원 총사퇴(21), 이기붕 부통령 사퇴 고려’(23), 이승만 자유당 총재 사퇴(24), 구속 학생 전원 석방(25) 등 일련의 양보 조처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민중의 분노를 막기엔 너무 늦었다. 25일 대학 교수 수백 명은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자는 펼침막을 들고 서울 시내를 행진했다. 26일 다시 1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초등학생들까지 국군 아저씨들, 부모 형제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며 참가했다.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대법원장 조용순은 “419 시위는 순수한 운동이라 했으며, 계엄사령관 송요찬도 희생자는 나라의 보배라고 했다.

 

독재자를 후원해 온 미국은 이 상황에서 데모가 민중의 분노의 반영이라고 믿는다”(미국 국무장관 허터)며 이승만 사퇴를 종용했다. 426, 압제자는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의 무능

 

자본가 야당인 민주당이 4월 혁명 이후 어부지리로 권력을 잡았지만, 자유당 못지않은 무능과 부패를 보여 줬다.

 

민주당은 혁명의 성과를 발전시키기는커녕 굴러들어온권력을 독식하려고 심각한 내분에 빠진다. 오히려 혁명 과업은 완수되었으니 학생들은 학원으로 돌아가라며 투쟁의 에너지를 잠재우려 했다. 이 때문에 민중의 불만은 매우 높았다.

 

그런 불만들은 혁명이 국가 권력을 이완시켜 만들어 낸 공간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혁신정당 운동, 학원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 등이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도 탄력을 받았다. 노동자들은 노조 민주화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싸웠다. 19601월부터 4월까지 쟁의는 60여 건이었지만 419 이후 12월까지는 454건으로 크게 늘었다.

 

1960년 한 해 동안 노동자들은 노조를 388개나 새로 만들었다. 노조는 총 914개로 전년(588)에 비해 64퍼센트 늘었다.

 

이런 저항과 급진화 분위기를 억누르려고 민주당 정권은 데모규제법과 반공법을 도입하려 했고, 민중은 이에 다시 저항했다.

 

영감과 교훈

 

그러나 4월 혁명의 열기와 정신은 결국 박정희가 이듬해 516일에 일으킨 쿠데타에 짓밟혔다. 민주당 정권이 혁명의 요구를 철저히 배신한 상황에서 박정희는 혁명을 계승한다고 내세워 혼란을 조장하면서 반혁명을 성공시켰다.

 

4월 혁명은 독재정권의 폭정에 맞서 자생적으로 발생했다. 정치적 구심 구실을 하는 조직은 없었다. 더구나 자본주의 생산을 멈출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이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군부 쿠데타에 취약했다. 이는 노동자 대투쟁이 민주화 운동을 뒷받침한 1987년의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처음으로 민중이 독재자를 내쫓은 투쟁은 위대한 역사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특히,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용기는 지배자들의 뇌리에 섬뜩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민중에게 떠넘기며 갖은 반민주적 정책을 밀어붙이는 이명박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반세기 전의 투쟁은 여전히 많은 영감과 교훈을 준다.


덧) 이 글을 쓴게 4년 전이다. 이명박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더 본격적인 과거 회귀 정권이 들어섰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독재자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저지르던 조작들을 21세기에 국정원이 다시 하고 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겠냐만 역사의 진보는 결코 손 쉽게 얻을 수 있는게 아닌 것 같다. 이런 저런 일들과 세월호 참사로 기분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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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ers 2014 KBS 판매가 시작되었다. 설레인다. 


근래에 마셔본 맥주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훌륭한 것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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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 2013년이 지난지 한참 됐는데, 2013 평가(?)도 못 하고 참. 어쨌든 내 스스로도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사상 초유' 따위의 일들이 많았던 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지고, 전국민이 다 아는, 대통령을 비롯해 행정부 고위 관료들과 국회, 언론에서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단어 '종북'. 바야흐로 신부님도 목사님도 스님도 다 이제 종북주의자인 시대. 2013년을 하나의 표로 나타내면 바로 위 표가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Are you Jong-B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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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시계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이명박 때는 천천히 뒤로 감았다면, 박근혜 때는 더 빨리 감는 느낌이다. 민주노총 사무실이 처음으로 침탈을 당했다. 이것은 정부가 전면전을 하겠다는 선포고 민주노총은 당연히 파업 선언으로 화답했다. 문제는 예전에 늘상 그러했듯 이번에도 '뻥 파업'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칼을 목에 데고 협박하는데, 뻥카만 치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한 마디로 자존심도 없는 쪽 팔리는 짓이다. 


애초 정당성이 결여된 정부가 위기를 모면하는 방법은 강경 탄압밖에 없다. 이승만이 그랬듯, 박정희가 그랬듯, 전두환이 그랬듯. 아마 2013년 언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뭐니뭐니해도 '종북'일 게다. 갑자기 '종북주의자'들이 늘어 나서가 아니다. 갑자기 북한의 위협이 현저히 증대되서가 아니다. 정부가 종북몰이를 통해 반대 목소리를 틀어 막고 사람들을 위축시키려 하기 때문에 신문 펴면, 티비만 켜면 종북종북 거리는 것이다. 이제는 신부님도 목사님도 스님도 다 종북인 세상이 돼 버렸다.


철도 파업에 대한 사상 초유의 강경대응도 연장선에 있다. 물론 정부는 합법 파업이든, 불법 파업이든 무조건 탄압한다. 특히 철도같이 물류 수송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공공 영역의 파업에 대해선 더 그렇다. 그렇다면 애당초 지금의 방식, 즉 필수업무유지를 지키면서 하는 합법 파업의 방식을 택할 게 아니라 전면적인 파업을 택했어야 했다. 봐라. 어차피 정부는 합법 파업을 해도 불법이라고 지랄하며 때려 잡지 않나. 


철도 파업이 길어져도 큰 파괴력을 갖지 못 하는 게 지킬 건 다 지키면서 파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전면 파업 기억을 떠올려 보면 2~3일이면 난리가 난다. 파업이 힘을 가지려면 모름지기 사회를 마비 시켜야 한다. 코딱지만한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해도 힘을 가지려면 학교가 쓰레기로 뒤덮이고 건물 화장실에서 오물이 쌓여 냄새가 진동해야 한다. 이것이 마비이고 파업의 힘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존재감 없는 유령이었던 노동자들이 실제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마법 같은 힘이다. 


철도가 승리하려면 당장 전면 파업으로 돌입해야 한다. 물류를 마비 시키고, 수송을 마비 시키고, 한국 사회를 마비 시켜야 한다. 정부는 어차피 불법 파업이라 난리 칠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불법 파업'으로 응수해줘야 하지 않겠나. 원래 승리하면 합법이고, 지면 불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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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운동? 그러기엔 뭔가 좀 부족한 것 같고. 어쨌든 매우 빠른 속도로 번진 현상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빨리 번진 만큼 또 빨리 꺼질 수도 있다. 자고로 사회 현상에는 휘발성이 강한 성질이 있기 때문에.


솔직히 참으로 놀랍다. 도대체 대학생들이 대자보를 안 쓰고 안 본지가 얼마나 오래 됐는가. 먹고 먹히는 사회의 경쟁이 대학생들의 일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대자보란 그냥 틀에 박힌 소위 '권'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마저도 몇 년 전부터는 근사하게 출력한 각종 학원, 기업 후원을 받는 스펙 쌓기 동아리의 홍보물에 묻혀서 금방 덮히기 일쑤다. 지금 지성의 전당(?)이라는 서울대에 한 번 가봐라. 내 말이 틀렸나.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득한 학생들은 그것을 대학에 와서도 한다. 토익, 텝스, 학점, 스펙, 스펙, 스펙…예전 대학생들은 지긋지긋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이라는 곳에 가서 해방감을 맞봤다면, 지금 대학생들은 고등학교의 연장선인 대학을 다니고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졸업하면 정말 낭떨어지에 내몰리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받는 경쟁 압력이 더 클 것이다. 그만큼 좌절도 더 할 것이고. 회상을 해보자면 내가 처음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학교 본관 앞 광장에 대낮부터 막걸리 마시는 학생들을 왕왕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군대에 다녀와 복학했을 때부터는 4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왠 대자보? 그리고 한 명이 아니라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붙이는 것은 도대체 뭐지.


내가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도 느끼고 있었구나라는 심정일 것이다. 우리는 이명박 때부터 조금씩 천천히 위축됐던 것 같다. 한 마디로 국민을 쫄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1년 동안 이게 지속되고 나아질 전망이 아예 보이질 않는 것이다. 언제부터 정부와 언론은 툭하면 '종북'이라 낙인 찍는다. 이걸 해도 종북, 저걸 해도 종북. 이제는 좌파 활동가, 노동조합 활동가, 시민단체 회원 등 원조 빨갱이(?)말고도 신부님, 목사님, 스님 등도 종북이란다. 정말 전국민의 종북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광범위한 낙인찍기를 보면서 처음에는 단순히 '나는 종북이 아니니까'하고 넘어갔을 게다. 그러나 이 광기가 심해질 수록 자신 스스로도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서 현 정부에 비판적인 말을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 종북몰이의 진짜 목적은 진짜 종북주의자를 솎아 내려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이 현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말을 함부로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위축시키고 스스로 말을 검열하고. 이게 종북몰이의 진짜 무서운 점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뭔가 허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매일 바쁘게 토익 공부하고 학점 따고 취직 준비하고 이미 취직한 사람은 개처럼 일하고…..애인 만날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결혼은 언감생심, 집 사는 것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고……나는 열심히 사는데 달라지는 것은 없고 미래에는 달라질 것이란 희망도 없고. 모두가 열심히 살지만 모두가 불행한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갖고 살았다. 그리고 싸늘한 냉기가 그 구멍을 통해 왔다갔다 했다. 무서워서 함부로 개기지는 못 했지만, 그냥 궁금해서 '안녕들 하십니까'하고 물어 보니 사람들이 반응한 것이다. 사실 나도 안녕하지 못 했다고. 그런데 무서워서, 남들은 다 그냥 잘 사는 것 같아서 안녕한 척 했다고. 


이 현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매우 흥미롭고 감동적이기 까지 하다. 냉소로 가득찬 내가 그동안 느꼈던 감정을 아주 잘 표현했다. 


나는? 물론 안녕치 못 하지. 다른 사람들 하고 똑같이. 이 정신 나간 세상에 누가 안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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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t tech의 마지막 what I really do 정말 너무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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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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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터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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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결국 법외 노조의 길을 선택했다. 동료를 내치라는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차라리 법외 노조가 되겠다고 선택한 것이다. 실리주의와 패배주의가 팽배한 노동조합 운동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의 원칙있는, 그러나 쉽지 않은 결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것도 지도부가 아닌 평교사 조합원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감동이다(오히려 지도부는 멈칫거렸을 수도 있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나이 들면 점점 몸뚱이가 무거워지고 보수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 하물며 1,000명 넘게 해직된 그 힘든 불법 10년 세월을 견디고 합법화된 이후에도 어느 노동조합보다 많고 거센 탄압을 상시적으로 받았던 전교조다(아마 현대자동차노조를 제외하곤 단연 압도적으로 탄압과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법외 노조로 돌아가라고라? 말이 쉽지 이건 정말 대단한 결정이다.


진짜 우린 후진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은 정말 슬퍼해야 한다. 입으로는 맨날 글로벌 글로벌 외치고 경제 규모가 얼마니 자랑하면서, 전국 최대 규모의 교사노조가 해직자들이 있다고 법외 노조가 되는 나라가 이 세상 천지에 도대체 어디있냐. 정말 부끄럽고 슬프도록 후진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그 후짐을 조금이나마 만회하는 게 원칙있게 힘든 고난의 길을 선택한 전교조 평교사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불의에 조금만 타협하면 몸은 편해질텐데. 더군다나 조합원의 상당수는 불법 시절을 전혀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일 텐데.


어쨌든 아침 신문을 보고 한 자 끄적여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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