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EBS에서 방영된 <공부의 배신>이라는 프로그램은 최근 들어 본 다큐멘터리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다. 부모의 소득과 직업, 사는 지역, 아파트 가격과 자녀의 수능 성적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한 줄은. 그리고 그 모습을 눈으로 생생히 보니 너무 놀라웠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매 입시철이면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훈훈한 미담(?)이 신문에 소개되곤 했다. 그러면서 '노력하면 된다'는 신화를 부축이고 불합리한 이 사회가 나름 공평하다고 선전하는 근거로 사용됐다. 그러나 이제는 그 누구도 그 따위 얘기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가 없다. 그냥 개천에서 용 쓰는 거다.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지옥같은 입시를 경험했다. 그 어린 마음에도 나는 세상은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적어도 입시, 교육에 한해서는). 왜냐하면 내 부모님 세대는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를 거친 세대였지만, 나는 고교 입시가 없어진 고교평준화의 혜택을 누린 세대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자식 세대는 대학평준화까지는 아니어도 입시 경쟁이 완화될 거라 믿었고 그렇게 희망했다. 그러나 내가 입시를 경험한지 20여년이 지나 이제 내 자식이 태어날 즈음의 상황을 보니 나아지기는커녕 경쟁이 훨씬 더 악화됐다.
우선 고교평준화가 사실상 붕괴했다. 물론 내가 중학생일 때도 외고, 과고는 존재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수도 적었고, 극소수의 학생들만이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온갖 종류의 특목고가 난립하고 자사고까지 생겼다. 중학교 성적 상위 50%만 지원할 수 있는 자사고의 존재는 이미 1등 고등학교와 2등 고등학교를 나누는 것이다. 또 입시를 위한 경쟁을 시작하는 연령이 훨씬 내려갔다. 나는 중학생 때 맨날 하던 일이 자전거 타고, 친구들과 잠자리 잡으러 다니는 것이었다. 굳이 내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그때는 다 그렇게 놀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가서 야자도 하고 학원도 다니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초등학교, 아니 그 이전부터 입시를 준비한다니 끔찍한 현실에 숨이 막혀온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다 보면 온갖 공익(?) 광고들이 난무한다. 무슨 60년대 미개한 국민들을 계몽한다는 정권도 아니고 가랑이 벌리고 앉지 마라, 임산부 석은 비워놔라(임신 초기에는 외형으로 임신 여부를 알 수 없다), 사람이 내리고 타라 등등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들을 하루 종일 하고 있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보면 알겠지만 가랑이 쩍 벌리고 앉아 있는 놈들, 임산부에 앉은 남자, 내리기도 전에 밀고 들어오는 아줌마 천지다. 다 큰 사람들이 기본적인 상식과 매너, 공중도덕이 없는 것이다. 사실 이런 거는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거다. 무슨 초딩들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영어 가르치고 함수를 가르치나. 초딩들은 그냥 땅따먹기하고 구슬 치기하고 고무줄하면서 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살아가려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예의 범절과 에티켓을 배우며 남들과 어떻게 친해지고 어울리는지를 배우는 거다. 그때 병신 같은 교육을 받고 어륀지니 이 지랄하고 있으니 몸뚱아리는 다 큰데 하는 짓은 애같은 인간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때부터 옆의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배우는게 아니라 옆의 친구를 짓밟고 올라가야지 자기가 성공하는 것을 몸으로 배우기 때문에 구급차가 지나가도 양보를 하지 않고 뻔뻔히 자기 갈 길 가는 놈들 천지인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 태어날 애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너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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