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는 동물 관련 프로그램 가운데 보기 드물게 수준있고 잘 만들었다. 대개 관련 프로들은 흥미를 유발할 만한 기이한 사연이나 자극적인 영상 혹은 의인화를 통한 감정이입 등으로 점철(!)돼있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서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결여돼 있는 게 보통이다.


특히 난 이 노골적인 제목이 마음에 든다. 괜히 돌려 말하지 않고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게. 좋은게 좋은 거지 따위의 뜨뜨미지근한 게 아니라 강렬하게 꽂히는 돌직구. 내가 만나는 수많은 보호자 가운데 상당수에게는 내가 바로 해주고픈 말, 그러나 불필요한 오해와 상처를 주고 vet-client bond를 깰 수 있어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말, 하루에도 몇 차례는 목구녕까지 차 오르는 말.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 


개를 입양해서 키운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매일 산책을 시켜 줘야 하고, 놀아 줘야 하고, 밥과 신선한 물도 챙겨 줘야 한다. 변도 치워 줘야 하고 오줌도 닦어 줘야 한다. 다른 사람, 다른 동물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어릴 때 사회화 교육을 시켜줘야 하고, 매너 교육도 필요하다. 정기적인 예방접종과 심장사상충을 비롯한 기생충 예방약도 투여 해야 한다. 중성화 수술도 꼭 시켜줘야 하고 나이들면 생기는 온갖 병들에 대해서도 적절한 치료를 해줘야 한다. 이처럼 많은 시간, 귀찮음, 열정, 돈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기간은 대개 15년 이상이다.


물론 개는 애가 아니지만, 이 세상 어떤 누구도 즉흥적으로 애를 갖지는 않는다(간혹 그런 사람도 있지만 대개 후회한다). 애를 갖으려면 미리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그것을 설계한다. 어떤 누구도 애를 집안에만 가둬 놓지 않는다. 똥오줌을 못 가린다고 혼내고 때리지 않는다. 가릴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킨다. 사회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정규 교육과정도 밟게 하고 필요하면 학원도 보낸다.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아프지 않아도 꼬박꼬박 예방접종을 시킨다. 하지만 개는? 그냥 집에 데려와서 사료하고 물만 주면 잘 살 것이라 생각하나? 내가 보호자한테 자주 하는 말은 "애 키우는 데 들어가는 노력의 천분의 일만 들이면 아주 훌륭한 개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개는 쇼 윈도에 있는 예쁜 가방이 아니다. 숨을 쉬고 변을 보며 짖기도 하고 말썽도 피우는 동물이다. 매일매일 산책하면서 다른 동물 냄새 맡는 것을 좋아하는 생명체다. 각각 개성도 다 틀리다. 이 당연한 사실을 무시하고, 매일 집에만 가두고 산책도 안 시키고 관리도 안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취급을 당하는 개들은 마음의 병을 얻는다. 때 맞춰 접종하고 사상충 예방을 한다고 애가 건강한 게 아니다. 마음은 썩어 문들어져 있다. 그래서 필요 없이 짖고, 집안 물건을 물어 뜯고, 대소변을 아무데나 싸고, 사람을 물고..등등. 이는 개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만든 보호자의 잘못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보호자도 개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알지 못 했으므로 누구의 잘못도 아닐 수 있다.


어쨌든 이런 프로그램이 너무 반갑고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계몽주의적인 것은 정말 밥맛이지만, 대한민국의 반려견 문화는 너무 후지기 때문에 이런 계몽이 너무나도 절실하다. 


지금 옆에 개가 있다면, 나는 진정 개를 키워도 되는지, 그 개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 그 개때문에 나 역시나 행복한지 한 번 생각해 보라. 신문에 실린 한 인기 수의사의 칼럼처럼 고맙다고 말하며 폭풍 포옹을 하지는 마라. 그것은 분리불안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평소에 스스로 무료함을 느끼지 않게 다양한 environmental enrichment를 해라. 그게 폭풍 포옹보다 개가 훨씬 필요로 하는 것이다.


다만, 이 프로를 보고 죄책감을 갖지는 마라. 자신이 처한 상황이 개를 키우기에 충분히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그 개를 포기해선 안 된다. 그것은 죄악이고, 그 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 것이다. 처한 상황에서 개가 최대한 행복하게, 그럼으로서 사람도 함께 행복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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