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를 보면 참 일관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미국 노동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로저와 나>, 그건 아마 자신의 출신 배경에 따른 형제 자매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배자들의 위선을 들춰내는 촌철살인 능력(<화씨 911>), 잔인하기 짝이 없는 미국 사회에 대한 고발(<볼링 포 콜롬바인>, <식코>, <자본주의: 러브스토리>) 등등.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매년 2달의 유급 휴가와 13월의 월급이 보장되는 이탈리아, 패스트푸드와 콜라가 없는 프랑스의 급식, 대학 무상교육을 하는 슬로베니아, 과거사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성하고 후대에 가르치는 독일, 범죄자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노르웨이, 숙제가 없는 핀란드. 미국인인 마이클 무어에겐 천국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은 데모하면 물대포로 반 죽여놓고(백남기 농민은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다), 노동조합 총연맹의 위원장은 당선되면 반드시 구속하고, 제1의 진보정당은 해산시키고, 북한과 똑같이 역사를 국정교과서로 가르치고, 돈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입을 틀어 막고,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사드를 배치하고, 북한에 대한 압박 일변도로 북핵 실험을 초래하고. 지옥이 실존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누구는 얘기할 것이다. 한국은 저런 복지를 할 돈이 없다고. 기업들의 실적도 안 좋고 어쩌고 저쩌고. 그러나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미국 노동자들은 유럽 노동자들보다 직접세는 적게 낼 지언정, 그외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의료비와 교육비가 어마어마하다. 이를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요즘 들어 다시 주목받는 허경영의 황당무계하다고 평가밨던 공약, 즉 출산하면 3천 만원씩 지급하겠다는 것.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위해 투여한 돈이 150조다.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수가 450만 명이다. 3천 만원씩 주고도 10조가 넘게 남는 것이다. 허경영의 말처럼 예산이 부족한 게 아니다. 국가에 도둑놈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우병우, 진경준, 조윤선, 홍만표 등 한국의 슈퍼 엘리트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만 봐도 희극인 같은 그의 지적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저 천국같은 나라들의 모습이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탈리아에서 오토바이를 만드는 노동자의 말처럼 이는 그 윗 세대 노동자들이 싸워서 쟁취해 낸 복지이고, 지금도 그것을 유지하려 싸우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국 노동자와 미국 노동자도 할 수 있다. 단결해서 싸우면 가능하다. 경제를 마비시키고 나라가 절단 나도록 싸우면 가능하다. 박상영의 외침처럼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럴 부는 이미 충분히 있다. 아니 차고 넘친다.




아 참,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은 세계 첫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아이슬란드를 소개하면서 그 이후 수도 없이 많은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고 소개하는 장면에 박근혜가 나온 것이다.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일지언정 박근혜 정부 하에서 여성의 삶은 그 어느때보다 힘들다. 여성 혐오가 더 광범위하게 퍼지게 됐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는 치마 두른 남성, 마초다. 뼈 속까지 독재와 권위주의가 아로새겨져있다. 그를 소개하는 것은 영화 취지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즐거운 추석 연휴에 재밌게 영화 보다가 구역질 나서 짜증이 머리 끝까지 솓구쳤다. 


이번 영화를 보니 마이클 무어가 더 살이 찐 것 같은데, 건강 오래 유지하고 좋은 작품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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