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박점규, 2011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9일까지 있었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 투쟁을 다룬 책이다. 저자인 박점규는 금속노조 활동가로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농성을 하며 이 기록을 남겼다. 


사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은 훨씬 이전인 10여년 전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2010년 당시 현대차 불법 파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고, 보수적인 법원에서의 마저 이런 판결은 투쟁의 불을 당기는 역할을 했다. 


인생이 그러하듯, 그리고 때로는 역사적 사건이 그러하듯 점거 투쟁도 우연한 기회에 촉발됐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렇게 점거는 시작됐고, 이는 한국 노동운동사에 분명히 기록될 큰 사건이 됐다. 


이 책은 세세하게 당시 일을 기록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숨소리, 뒤척이는 움직임까지 느껴진다. 그들과 동거동락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생생한 리포트에 비해 분석은 다소 취약하다.


나는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 기억한다. 정부, 회사, 언론 등은 전방위적 공격을 해댔다. 사실 이는 어느 파업이나 투쟁에도 있는 일종의 상수이다. 이보다는 오히려 우군이라 믿었던, '형님'이라 믿었던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 지도부의 배신 그리고 더 나아가서 파업 파괴 행위가 더 괴로웠을 것이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는 정규직 노조 지도부에 쩔쩔 매며 파업 종료를 종용하기만 했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힘을 줄 수 있는 연대 파업은 불발됐고, 가진게 맨 주먹밖에 없던 이들은 결국 점거를 풀어야 했다. 굳이 승패를 따져야 한다면, 이 투쟁은 패배다. 그러나 영웅적인 패배였고, 그렇기 때문에 훗날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25일의 격렬한 투쟁은 끝났지만, 2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된 게 없다. 지금도 2명의 비정규직 조합원이 철탑에서 180일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역사 발전은 때로는 더디다. 그리고 거기에는 공짜란 없다. 애누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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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거웠다. 긴장감이 없었다. 방예담이 아무리 능력있고 미래가 촉망받는 친구라 해도 (미안한 얘기지만)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노래를 아주 잘하는 범인일 뿐이다. 권투로 치면 체급이 다른 거다. 페더급과 헤비급이 경쟁을 할 수 있겠는가. 하나마나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우승을 당연히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아니다. 상대방이 엄청난 팬들을 확보했다면 악동뮤지션은 떨어졌을 수도 있다. 지난 슈퍼스타K에서 흔히 봐 왔듯이 말이다. 왜 싱거웠냐면 이미 이들은 우승이냐, 준우승이냐가 중요하지 않은 상태, 그것을 초월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진정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발굴해낸 보석이었고, 한국의 천편일률적인 대중음악 상황에선 더더욱 그랬다. 역설적으로 주류 KPOP과 가장 이질적이고 공통점이 덜한 참가자가 KPOP 스타 우승자가 된 것이다. 


정말 이들의 능력은 클라스가 다르다. 다른 차원이다. 능력의 차이가 너무 커 다른 참가자가 단시간 안에 그것을 뛰어 넘을 수가 없었다. 이는 마지막 경연곡 MMMbop만 봐도 알 수 있다. 영어 라임에 맞춰 "음 바빠도 TV 다 봤어" 같은 가사는 범인이 도저히 상상해 낼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우승을 했으니 이제 대형 기획사 가운데 하나에 들어 갈 것이다. 불가능하겠지만 '노터치' '무보정'을 기대해 본다. 이들의 매력은 지금처럼 순수하고 깜찍하고 재기발랄할 때 가장 빛난다. 메이저의 손길, 상업적 고려는 그 매력에 뺄셈을 할 뿐이다. 그들의 노래를 감탄하며 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음반이 나오길 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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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지 않은 이런 자연스런 모습이 제일 어울린다


악동뮤지션은 돋보적이다. 방송에서 공개한 음원은 나올 때마다 모든 차트 1위에 오른다. 늘씬한 S라인의 걸그룹이든, 칼군무의 보이그룹이든 모두 '올킬'이다.


(사회적 기준으로 봤을 때) (보시다시피) 예쁘지도 잘 생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노래를 꾀꼬리처럼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감정이 짙은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리버리해 보이는 남매에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뛰어난 작곡 능력, 센스있는 가사, 때묻지 않은 순수함, 남매의 조화로운 호흡 등등. 부분적으로는 다른 참가자들도 가지고 있다. 


싱어 송 라이터 참가자는 계속 있었다. 그리고 몇몇 자작곡 들은 상당히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확언컨데, 수많은 오디션 참가자 가운데 이런 팀은 없었다. 그 능력에 있어 클라스가 다르다. 끊임없이 나오는 자작곡 들을 들어보면 누구나 단박에 이찬혁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것이다. 


여기에 센스있는 가사가 더해진다. 사춘기 남/여자애가 할 수 있는 얘기 딱 그거다. 이들이 심각하게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을 상상해 봐라. 아니면 서른 즈음에를 부른다든지. 뭐든지 때가 있는 거고 어울리는 게 있는 거다. 이들은 오바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와 가사를 부른다. 


가끔 앳띤 얼굴의 참가자가 심각한 사랑 노래를 인상 쓰며 부르는 것을 보면 우습다. 거기에 심사위원들이 감정이 좋고 어쩌고 평가하는 것을 보면 황당하다. 쟤네가 가슴 시린 사랑을 해보기나 했을까. 길 가다 그냥 핑 하며 눈물 돋는 경험을 해봤을까. 한국말로 된 가사를 읽을 수는 있겠지만 그 한국말을 진정 이해하고 있을까. 뭐 그냥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제대하고 20대 중반에 복학했을 때 같이 수업듣는 누나가 자신은 29살 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서른이 된다는 두려움에 압도되어 무서웠다 했다. 그리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가사가 그렇게 와닿았다고 했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서른이 넘어서, 그리고 30대 중반이 되가는 지금 그런 것 같다. 나한테는 서른 즈음 보다는 오히려 지금 그 가사가 더 와닿는다. 


무엇보다 이들이 많은 인기를 끄는 것은 천편일률 적인 케이팝 씬 때문이다. 티비를 켜면 비슷한 애들이 다른 이름의 팀으로 나와서 인상 쓰며 (혹은 온갖 귀여움을 떨며) 정신없는 춤을 추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가사 (혹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유치한 가사)를 주문처럼 외운다. 다양성이라곤 찾아 볼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김치찌개를 먹을 순 없다. 된장도 먹고 순두부도 먹고 콩비지도 먹고 그래야지. 그런데 우리나라 가요는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그냥 김치찌개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지가 족히 10년은 된 것 같다. 정말 아무리 개인의 창의성을 말살하는 자본주의여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때론 심사위원들에게 비대중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잊지 말자. 그들은 한국 음반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메이저 기획사의 수장(급)임을. 그들이 비대중적이라 느끼는 것을 꼭 대중들도 그렇게 느끼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천편일률 적인 한국 음악 시장을 만든 것은 메이저 기획사들이다.


그들이 우승을 할지, 준우승을 할지 모르겠다. 사실 나한테는 별 중요치 않다. 그저 빨리 앨범이 나왔으면 좋겠다. 또 어떤 보물같은 곡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앨범이 빨리 나오길 기다려지는 팀은 처음이다. 그런 면에서도 이들은 클라스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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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감독 조근현, 2012


보기 전에 걱정이 앞섰다. 흥행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좋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혹평을 접한터라 너무 실망할 까봐.


결론부터 말하자면, 괜찮았다. 아니 좋았다. 내가 너무너무 기대를 안 해서일까.


물론, 짜임새는 상당히 느슨하다.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인지 정도를 넘어선 듯한 비현실성도 느껴지고, 너무 오바스런 캐릭터와 2시간 내내 거슬리는 오바스런 (정말이지 너무 오바스런) 곽진배의 사투리도 별로였다. 때로는 감동을 쥐어 짜려는 듯한 장면도 있었다(이런 장면이야말로 감동을 가장 저해하는 것이다). <화려한 휴가>, <홀리데이> 같은 영화들이 좋은 소재를 충분히 잘 못 살린 것도 과도하게 감동을 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소재가 워낙 훌륭하고,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엉성한 짜임새에도 상당히 몰입해서 볼 수가 있다. 특히 심미진이 혼자 '그 사람'이 탄 차를 겨누며 암살을 시도할 때, 몸의 온 신경이 집중돼 하나가 됐다. 상영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그때 죽지 않을 게 뻔하지만서도 제발 죽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심미진이 소리를 지르며 "죽어"를 외칠 때, 나 역시 속으로 "죽어"를 함께 외치며 방아쇠를 당겼다. 온 몸의 근육에 힘을 꽉주고 주먹을 불끈 쥔채로 "죽어"를 외쳤다. 그리고 조금 후 땀을 흘리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한테 감정이 별로 안 좋은가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말이야"(이는 전두환이 실제로 한 얘기다) 하며 뻔뻔스레 살아가는 현실이야말로 이 영화가 흥행가도를 달릴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현실에선 호의호식하는 '그 사람'을 영화 속에서나마 죽이려고 한다는 것에 나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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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1985, 감독 정지영, 2012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있었던 김근태에 대한 고문을 다룬 영화다. 감독은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이다. 배우도 상당히 겹친다. 박원상, 이경영, 문성근 등.


영화는 상당히 비장하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그럴 수 밖에 없다. 흡사 다큐멘터리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인간임을 포기한 고문 기술자와 그가 벌이는 야수적 능욕을 아주 잘 그렸다. <부러진 화살>처럼 현실의 소재를 훌륭히 영화해 했다. <부러진 화살>의 유일한 아쉬움이 박원상의 오버스런 캐릭터였다면 <남영동 1985>는 그런 아쉬움도 없다. 특히 문성근과 이경영의 담담한 연기는 인상쓰고 소리지르고 화내는, 전형적인 악역의 캐릭터를 포기해도 충분히 그 맛(?)을 살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좋은 소재를 제대로 영화하지 못 한 영화가 많은데, 좋은 소재의 좋은 영화다. 


이런 영화를 천 만 관객이 봐야 한다.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 되는 비극을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또 지금의 이 형편없는 민주주의 조차도 수많은 민주주의 투사와 민중의 힘으로 이뤄졌음을. 



한국 현대사에서 자행된 고문과 야만은 위 책에 잘 서술돼 있다. 지금은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의 역작이다. 


다음은 1985년 12월 19일 김근태가 한 법정 진술이다.


본인은 9월 한 달 동안, 9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5시간 정도 당했습니다. 전기고문을 주로 하고 물고문은 전기고문으로 발생하는 쇼크를 완화하기 위해 가했습니다. 고문을 하는 동안 비명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라디오를 크게 틀었습니다. 그리고 비명 때문에 목이 부어서 말을 못하게 되면 즉각 약을 투여하여 목을 트이게 하였습니다(어지러운 듯 말을 중단하고 난간을 붙들면서 잠깐 쉬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9월 4일 각 5시간씩 두 차례 물고문을 당했고, 9월 5일, 9월 6일 각 한 차례씩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골고루 당했습니다. 8일에는 두 차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고, 10일 한 차례, 13일.....13일 금요일입니다. 9월 13일 고문자들은 본인에게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가 죽었던 최후의 만찬이다" "너 장례날이다" 이러한 협박을 가하면서 두 차례의 전기고문을 가했습니다......그 다음에 20일날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한 차례 받았습니다. 그리고 25일날 집단적인 폭행을 당했으며 그 후 여러 차례 구타를 당했습니다. 물론 잠을 못 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밥을 굶긴 것도 대략 절반쯤 됩니다. 고문 때문에 13일 이후에는 밥을 먹지 못 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밥을 먹지 못 합니다.


가방을 갖고 다니면서 그 가방에 고문 도구를 들고 다니는 건장한 사내는 본인에게 "장의사 사업이 이제야 제철을 만났다. 이재문(남민전 사건의 주범, 옥사했음)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 속으로 부서져서 병사를 했다. 너도 각오해라. 지금은 네가 당하고 민주화가 되면 내가 그 고문대 위에 서줄 테니까 그때 너가 복수를 해라" 이러한 참혹한 이야기를 하며 본인에 대한 동물적인 능룍을 가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본인은 알몸이 되고 알몸 상태로 고문대 위에 묶여졌습니다. 추위와 신체적으로 위축돼 있는 상태에서 본인에 대해 성적인 모욕까지 가했습니다. 말씀드리면 제 생식기를 가리키면서 "이것도 좆이라고 달고 다녀? 민주화 운동을 하는 놈들은 다 이따위야!" 이렇게, 말하자면 깔아 뭉개고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고문할 때는 온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그 다음에 고문대에 눕히면서 몸을 다섯 군데를 묶었습니다. 발목과 무르팍과 허벅지와 배와 가슴을 완전히 동여매고 그 밑에 담요를 깝니다.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고문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습니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하면서 전기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와 (이때 방청석에서 울음이 터지기 시작, 본인도 울먹이며 진술함) 이때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방청석은 울음바다가 되고 심지어 교도관들조차 숙연해짐)는 노래를 뇌까리면서 과연 이것을 지켜내기 위한 인간적인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절감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했으며 이러한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인간적인 절망에 몸서리쳤습니다(방청석 통곡).


그들은 고문을 하면서 "시집 간 딸이 잘 사는지 모르겠다", "아들놈이 체력장을 잘 치뤘는지 모르겠다"는 등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애정어린 말들을 주고받았으며 본인에게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고문과 폭력적 행위를 자행하는 자들이 개인의 가족들에게는 인간적인 사랑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이렇게 양면성이 공존할 수도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고문을 전담하는 자 중의 한 사람은 - 이름을 밝히지 않겠지만 - 나중에 혼자서 제 손을 잡고 이야기하기를 "고문을 하는 것을 보고 구역질이 났다. 여기서 빨리 나가라. 허위로라도 다 인정해라. 여기 있으면 당신은 죽는다"고 울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결국 9월 20일이 되어서는 도저히 버텨내지 못하게 만신창이가 되었고, 9월 25일에는 마침내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만 더 버티면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날 그들은 집단폭행을 가한 후 본인에게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빌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쓰라는 조서내용을 보고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투쟁의 역사에 큰 빚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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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맛쇼, 감독 김재환, 2011


사기꾼같은 맛집 프로그램에 대한 훌륭한 폭로, 그리고 이를 가능케한 빼어난 아이디어.


방송의 이런 단면은 혹세무민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그래도 요즘 방송을 보고 있자면, 맛 없는 집을 맛 있는 집으로 둔갑시킨 정도는 애교아닐까. 권력의 나팔수와 딸랑이가 되고 싶어하는 방송도 많은 데 말이다. 이러저래 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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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광은 가난한 청년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부모님은 이혼했고, 어머니는 간호조무사로 생계를 꾸린다. 어머니는 병원 기숙사에서 산다. 집이 없어서다. 홍대광은 노래를 하고 싶다. 돈도 벌어야 한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며, 사람들이 주는 돈을 받는다.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주머니에 몇 천원도 없었다.


그런 그가 수십 만의 경쟁률을 뚫고 슈스케4 탑4에 올랐다. 


물론, 이미 생방송에 들어선 상황에서 이는 인기투표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문자투표가 당락을 60% 결정하는 제도는 그 자체로서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인기있는 사람을 뽑을 수 밖에 없게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않은 혹은 갖지 못 하는 것을 갖은 사람을 동경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백혈병 산재와 노동자 탄압을 비판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건희를 닮고 싶어한다.[각주:1] 


이는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나타난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학을 간(혹은 현지에서 사는), 영어 잘 하고, 잘 생기고(혹은 이쁘고), 키 크고, 노래도 곧 잘 하는 데다 심지어 공부까지 잘 하는 엄친아/엄친딸 들은 인기가 있다. 선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꽤 높은 순위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 가진'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마저 1등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선망의 대상인 그들이 2등이나 3등까지는 올라가게 하지만, 1등은 그들보다 가난하고, 영어 못 하고, 잘 생기지 않고, 키도 크지 않고, 공부도 썩 잘 하지 않은 (노래 잘 하는 것만 빼면) 너무 평범한 사람들이 하기를 바란다. 


'다 가진' 참가자들은 굳이 우승을 하지 않아도, 미래가 창창하기 때문이다. 다 가졌기 때문에 굳이 더 갖지 않아도 잘 산다. 반면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은 왠지 모를 절실함이 있다.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불우해서, 노래로 '인생역전'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홍대광이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고생한 어머니와 앞으로 어머니가 고생할 날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프다며 우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이 우승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이입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라고 그동안 생각했다. 그런데 틀렸다. 아무리 삑사리가 나도, 키를 낮춰 불러도 잘 생기면 떨어지지 않는다. '다 가진' 자도 떨어지지 않는다. 가진 것이라곤 목소리 뿐인 가난한 청년이 떨어진다. 가슴이 아프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 했던 그런 감정이다. 일하고 돈 벌며, 공과금 내고 적금 붓고. 미래 계획은커녕 하루하루 정신없이 사는, 그런 일상이 양 어깨를 짓누르니 나와 좀 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고 응원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그런 감정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진심으로 이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진심이다. 글로써는 도저히 설명 못 하는 소외,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이를 안다.


홍대광같은 평범한 청년은 사회에서 1등이 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조차 1등을 하면 안 되나. 굳이 '다 가진' 사람이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마저 우승해서 더 가져야 하나. 그렇다면 너무 인정머리 없고 잔인한 사회 아닌가.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3061553491&code=92040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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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추억, 감독 김재환, 2012


"웃프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하자면 그렇다. 웃기고 슬프다. 아니 웃기지만 슬프다. 저 황당할 정도의 거짓말과 저렴함에 웃지만, 저게 현실이라는 것이, 그리고 우리의 삶이 그만큼 피폐하다는 것에 슬프다.


영화는 비장하게도 괴벨스의 말을 인용하며 처음과 끝을 맺는다. 그리고 강조하는 결론은 투표를 잘 하자는 것이다. 비장함에 비해 빈약한 결론이다. 


이런 작품을 놓고 구성이 어떠하니 짜임새가 어떠하니 논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기대하고 보는 게 아니므로.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참으로 저렴하다는 것이다. 아무데서나 반말을 찍찍 내뱉는다든지, 불쌍한 사병들이 열심히 군가 부르는 데 오물오물 밥을 먹는다든지. 연출되지 않은 그 모습을 보면 참.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하는 그 천박함도.


어쨌든 배급사의 표현처럼 '지난 5년을 정산하는 호러코미디'다.


영화를 보는 데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하나는 워낙 상영관이 적고 상영 시간도 좋지 않아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얼굴과 목소리를 한 시간 넘게 보고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우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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