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광은 가난한 청년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부모님은 이혼했고, 어머니는 간호조무사로 생계를 꾸린다. 어머니는 병원 기숙사에서 산다. 집이 없어서다. 홍대광은 노래를 하고 싶다. 돈도 벌어야 한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며, 사람들이 주는 돈을 받는다.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주머니에 몇 천원도 없었다.
그런 그가 수십 만의 경쟁률을 뚫고 슈스케4 탑4에 올랐다.
물론, 이미 생방송에 들어선 상황에서 이는 인기투표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문자투표가 당락을 60% 결정하는 제도는 그 자체로서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인기있는 사람을 뽑을 수 밖에 없게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않은 혹은 갖지 못 하는 것을 갖은 사람을 동경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백혈병 산재와 노동자 탄압을 비판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건희를 닮고 싶어한다. 1
이는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나타난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학을 간(혹은 현지에서 사는), 영어 잘 하고, 잘 생기고(혹은 이쁘고), 키 크고, 노래도 곧 잘 하는 데다 심지어 공부까지 잘 하는 엄친아/엄친딸 들은 인기가 있다. 선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꽤 높은 순위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 가진'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마저 1등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선망의 대상인 그들이 2등이나 3등까지는 올라가게 하지만, 1등은 그들보다 가난하고, 영어 못 하고, 잘 생기지 않고, 키도 크지 않고, 공부도 썩 잘 하지 않은 (노래 잘 하는 것만 빼면) 너무 평범한 사람들이 하기를 바란다.
'다 가진' 참가자들은 굳이 우승을 하지 않아도, 미래가 창창하기 때문이다. 다 가졌기 때문에 굳이 더 갖지 않아도 잘 산다. 반면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은 왠지 모를 절실함이 있다.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불우해서, 노래로 '인생역전'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홍대광이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고생한 어머니와 앞으로 어머니가 고생할 날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프다며 우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이 우승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이입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라고 그동안 생각했다. 그런데 틀렸다. 아무리 삑사리가 나도, 키를 낮춰 불러도 잘 생기면 떨어지지 않는다. '다 가진' 자도 떨어지지 않는다. 가진 것이라곤 목소리 뿐인 가난한 청년이 떨어진다. 가슴이 아프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 했던 그런 감정이다. 일하고 돈 벌며, 공과금 내고 적금 붓고. 미래 계획은커녕 하루하루 정신없이 사는, 그런 일상이 양 어깨를 짓누르니 나와 좀 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고 응원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그런 감정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진심으로 이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진심이다. 글로써는 도저히 설명 못 하는 소외,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이를 안다.
홍대광같은 평범한 청년은 사회에서 1등이 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조차 1등을 하면 안 되나. 굳이 '다 가진' 사람이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마저 우승해서 더 가져야 하나. 그렇다면 너무 인정머리 없고 잔인한 사회 아닌가.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3061553491&code=92040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