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흠 잡자면 비터가 필요 이상으로 쎄다. 그래도 올 초에 나온 거에 비하면 확실히 탄탄한 느낌이다. 홉 캐릭터도 잘 살아있고 필요 없는 몰티스윗네스도 없다. 확실히 퀄리티 컨트롤이 되는 느낌이고, 확실히 자리 잡은 느낌. 만약 한국 크래프트 맥주 대상으로 하는 연말 시상식이 있다면 장담컨데 크래프트브로스가 만장일치로 최소 4관왕은 차지할 것이다. 올해의 페일에일, 올해의 아이피에이, 올해의 맥주, 올해의 브루어리. 그동안 반신반의해서 1~2캔 샀다면 이제는 믿고 4~8캔씩 산다. 그래도 된다.
지금까지 나온 라이프와 수퍼, 원더 통틀어서 가장 부들부들하다. 마우스필만 놓고 보면 가장 훌륭한 뉴잉글랜드 스타일에 부합한다. 확실히 미국 1군에서 놀 수 있는 실력이다. 그 동안 반짝 잘 만들었다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퇴보하고 혹은 매 배치마다 부침이 심한, 그런 한국 크래프트 맥주들이 있었는데 이번 배치 마시고 좀 안심이 된다. 적어도 말도 안되게 구린 상태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적어도 어느 정도 퀄리티는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 같은 그럼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리 생각하면 마음이 좀 짠하다.
캔입 3일째 마심. 진짜 드라이 호핑을 했나 싶을 정도로 호피함이 떨어진다. 훌레이버가 전반적으로 약하고 매가리가 없다. 시들시들해서 누렇게 뜬 홉으로 드라이 호핑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약한 오렌지, 약한 복숭아, 약한 멜론. 마실 땐 그저 그랬는데 트림하면 올라오는게 상당히 호피하고 이스티하다. 트림 맛이 가히 일품이다. 언탭드 트림 점수는 4.5에 육박한다.
캔입 3일째. 첫 배치보다는 훨씬 낫고 시트라 싱글 홉 버젼보다는 못 하다. 호피함도 덜 하고 몰티스윗네스가 아닌 인위적이고 어색한 단 맛이 좀 튄다. 마치 빠다코코넛 과자나 버터스카치 사탕에서 나는 그런 단 느낌 말이다. 그래도 요새 아주 기대가 되는 맥주여서 아더해프 수입보다 얘네 출시가 더 관심을 끄는 건 분명하다.
원래 로컬에는 +10점을 준다. 뭐 약간 affirmative action 같은 거라 할까. 한국의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맛있고 신선한 맥주를 잘 만들길 바라는 충심에서 그런 것이라 할까. 그런데 크래프트브로스는 내가 살던 지역과 가까워서 종종 갔음에도 정이 전혀 안 가는 브루어리였다. 개중에 쓸만한 맥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냐하면 갈 때마다 맛 없고 비싸기 짝이 없는 안주를 시키라는 안주 강매 정책 때문에 가능한 안 가고 갈 때마다 기분도 별로였기 때문이다(지금도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무리 로컬이어도 크래프트브로스 맥주는 +10점 따위는 전혀 없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망고, 오렌지, 파인애플 과즙을 넣은 것처럼 향과 맛이 풍부하다. 뉴잉글랜드 스타일의 이스티함도 잘 살렸고 부드러운 마우스필과 낮은 비터감도 좋은 점수를 주기 충분하다. 굳이 아쉬움을 꼽자면 훌레이버가 잘 나가다고 훅 떨어져 힘이 딸리는 정도인데 이거는 굳이 단점을 찾으려고 해서 말하는 것이고 전반적으로 아주 아주 잘 만들었다. 칭찬할 만한 점이 압도적으로 많고 최근에 한국에서 나온 맥주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아니 지금까지 한국에서 나온 크래프트 맥주 가운데서도 이보다 뛰어난 완성도를 갖춘 맥주가 금방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도대체 맛이 형편없었던 작년 수퍼아이피에이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앞으로 장난질 치지 말고 트위스트한다 깝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면 훨씬 더 맛있는 맥주가 나올 것 같다.